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 (문단 편집) == 건조계획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9tDJZ-pYvo)]}}} || 소련이 건국되고 [[러시아 해군|러시아 제국 해군]]을 계승한 [[소련 해군]]은 기존 제국 해군의 [[강구트급 전함]] 4척을 근대화 대개장을 거쳐 재취역한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급 전함 4척을 기함으로 함대를 운영하여야 하였다. 결국 이는 12인치 주포를 탑재한 구식 전함을 기반으로 주변국을 상대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전함을 새로 설계하려 해도 자국 기술력은 충분치 못했던 데다가 외국에 발주하려 해도 [[적백내전]]을 거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열강 대다수와 사이가 틀어진 상태여서 이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이는 [[크릭스마리네|독일 해군]]이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건조하려 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으로 급격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함의 성능이나 설계사상이 강구트급 전함을 설계했을 때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그 당시 사용했던 기술과 노하우는 부분적으로 손실되었을 뿐 아니라 손실되지 않은 나머지도 상당 부분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구식에 불과했음을 의미했다. 1920년대 소련 공업이 스탈린의 5개년 계획에 맞추어 빠르게 성장하고, 내부 상황도 안정되자 소련 정부는 함대를 새로 재건할 계획을 새우게 된다. 거기다 가상 적국 독일이 빠르게 재무장하며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해서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에 신형 전함을 자체적으로 설계할 능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련은 이를 대대적인 연구와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극복해내고자 하였다. 1930년대 함대 정비 계획을 새로 수립한 소련은 전함 6척, 중순양함 4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이탈리아 안살도, OTO 社 등과 설계 계약을 맺은 후 다수의 설계도를 받는 등 이탈리아 측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듯 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양자간의 사이가 험악해지게 되고, 소련은 이탈리아와의 관계를 파기하게 된다.[* 계약 파기의 부분에서 이탈리아 쪽에서 파기를 한 것인지 소련의 스탈린에 의한 일방적 파기인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없다(Monakov, Mikhail; Rohwer, Jurgen. Stalin's Ocean-going Fleet: Soviet Naval Strategy and Shipbuilding Programs, 1935-53. Routledge, 2001). 또한 미국과의 기술이전 협상을 실시하지만 미 정부의 태클로 무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협상 주체였던 깁스&윌콕 사는 네 가지 통상 전함형 설계안과 세 가지 항공전함형 설계도를 제시하였다는 언급도 있으나 동일하게 명확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대독 포위망을 만들려던 영국의 정책에 따라 소련과 1937년 7월 17일에 영소 해군 조약을 맺어 소련의 16인치 함포 탑재 전함 4척을 포함한 신형함의 대량 건조를 공인해주는 한편 자국산 장비의 구입도 허용하면서 상황은 크게 호전되었고, 이에 소련은 안살도 측에서 넘겨주었던 [[리토리오급 전함]]의 강화판 전함 설계를 독자적으로 재설계하였다.[* 사실 리토리오급의 영향을 받은건 사실이나 재설계는 아니다.] 이후 이것을 완성한 설계안에 따라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으로 건조가 시작되게 되었다.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구성에 필요한 장비들이 먼저 테스트를 거쳐 실증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포 선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계획안에 따르면 16인치 주포를 탑재하기로 되어있어 충분한 화력으로 판단되었으나, 타국의 기존 전함 뿐만 아닌 새로 건조되는 전함까지 상대하려면 18인치 주포를 탑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로 추가되었다. 이후 18인치 주포를 탑재할 경우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선체는 이러한 중량 배분과 선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차기 전함 건조 계획안에 반영하되 현 설계에서는 16인치 주포를 그대로 탑재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제작된 16인치 주포 1문이 테스트 포탑에 장착되어 [[레닌그라드]]에서 성공적으로 발사 시험에 성공하였으나 이 주포는 이후의 전쟁 발발에 따라 레닌그라드 방어에 사용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 성공적으로 생존하여 현재도 남아있으며, 르제프스콤 시험장(르제프 시험장)에 위치하고 있다. 좌표는 59.9927021, 30.5275641 지점이다.] 1939년부터 레닌그라드 공창에서 1번함 '소비에츠키 소유즈'가 제작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동년에 2번함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가 니콜라예프(미콜라이우) 공창에서 기공, 3번함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와 4번함 '소비에츠카야 로시야'가 몰로토프스크(세베로드빈스크) 공창에서 기공되어 총 4척이 기공되었으나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1941년에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소련을 침공하자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던 소련은 사방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우선순위에서 처지고, 건조가 중단되어 완성된 함체의 일부, 그리고 발주된 자재들은 야포, 전차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그러다 독소전쟁의 종전 후, 건조가 중단되었던 3척의 전함[* 건조 중 결함 발생으로 이미 1940년 건조가 취소되었던 4번함을 제외한 나머지 3척의 함선이다.]에 대해 판단한 결과 건조가 적합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최종적으로 건조를 취소하게 된다. 이후 1957~59년에 걸쳐 해체되면서 프로젝트 24형 전함, [[프로젝트 66형 순양함]]을 비롯한 기존 함포 위주의 대형 군함들은 소련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실제로 건조되는 일이 없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